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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증거니라(출3:1-12) 2020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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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09-08 22:47 조회 26 댓글 0
 
                           이것이 증거니라(출3:1-12)        2020. 8. 30


출애굽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고난의 때가 차고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상달된 것이다. 애굽의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 소리를 하나님이 들어 주신 것이다. 출애굽은 애굽의 바로왕을 이기신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 세우신 하나님은 하룻 밤에 200여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2000여만 마리의 양과 소와 염소와 낙타를 노예의 현장에서 광야로 이끌어 내셨다. 뒤 따라오며 추격하는 애굽의 병거와 마병들을 홍해 물을 다시 맞닿아 흐르게 해서 수장시켜 버리셨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 혹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동행”이런 표현을 사용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세상을 내가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고, 추진하고, 목적한 바를 성취하며 사는 것이지 무슨 하나님의 섭리, 신의 섭리 운운하느냐”며 면박한다. 

오늘 우리는 호렙산 떨기나무에 불이 타오르는 듯한 환상 앞에서 여호와의 부르심을 체험한 모세의 부르심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이 때의 모세의 나이는 팔십 세였다. 이 내용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그 당시 430년째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모세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형편을 헤아리시고 저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실 계획에 대하여 말씀하신 장면이 담겨 있다.

모세는 3500년 전의 인물이다. 사람이 사람을 종으로 부리고 노예로 학대한 역사는 오래 전부터이다. 오늘 날도 노예 제도가 사라졌다고 볼 수가 없다. 국제인권 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북한에는 정치범 수용소인‘요덕 수용소’를 비롯한 수십 곳의 수용소에 최소한 20만 명 이상이 수감 되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나와서 탈북한 후에 남한에 와서 그 참상을 증거한 이들이 여럿 있다. <요덕 수용소>라는 뮤지컬이 무대에 올려진 것은 그들의 사실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이는 대신에 강제 노동형으로 평생 짐승처럼 노동을 시킨다.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며 살도록 수용소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가족 모두 어른 아이 다 같이 가둔다. 처음에 수용소에 갇히면 3개월 내내 강냉이 죽이라고 말하는 옥수수 죽만 준다. 나중에는 뼈만 남는다. 그런데도 새벽 3-4시에 일어나면 밤 9시까지 기계처럼 일하게 한다. 짐승을 부리듯이 중노동을 하게 한다. 핵 시설을 위한 땅굴을 파거나 위험천만한 공사 현장으로 끌려 다닌다. 

고기가 먹고파서 들쥐와 뱀을 잡아먹는다. 지렁이, 개구리, 소똥에 섞여 배설된 옥수수 알까지 주워 먹는다. 잡을 수만 있으면 날아다니는 것, 기어 다니는 것들을 족족 잡아서 입에 넣는다.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히면 공개 처형을 한다. 사형수는 일단 팔다리 관절을 꺾고, 먹이지 않고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해 뼈가 없는 문어처럼 사람을 짓이겨 버린다. 입에 재갈을 물리고 꽁꽁 묶은 채 군인 두 명이 한팔씩 잡고 사형장으로 끌고 나간다. 말뚝에 눈·가슴·다리를 묶고 사수 세 명이 나와 세 발씩 머리·가슴·다리에 총을 쏜다. 아홉 발을 맞고도 숨이 끊어지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총을 쏜다. 뒤통수가 터져 뇌수가 튀어나오고 뼈만 앙상한 비쩍 마른 다리 밑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이런 극악한 북한 공산당과 백두산 정상에서 손 잡고 사진 몇 장 찍는다고 평화가 오는가.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나라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 차별 문제를 보라. 최근에도 계속되는 미국 백인 경찰의 흑인 시민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그것은 단순한 한 사건이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의식의 저변에 무슨 생각이 깔려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과거에 백인들의 선조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들여다가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에서 짐승처럼 부렸다. 그런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의 그늘이 오늘날 여전히 잔존하는 차별의 심각한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에 팔려서 끌려간 아프리카 흑인 노예에 대하여 말하지만 그 수는 그 당시 노예의 4%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96%의 노예들이 멕시코와 남미의 사탕 수수밭 농장에 노예로 팔려 가서 짐승과 같은 중노동을 하였다. 후추, 설탕의 원료인 사탕 수수, 목화, 은, 금 채광을 위해서 팔려간 노예의 수가 무려 연 인원 1100만 명에 달하였다. 아프리카에서 태평양을 베로 이송되는 중간에 100명 중에서 45명이 영양실조와 비타민 부족과 각종 질병으로 죽었다. 죽은 시체는 태평양 바다에 물건 던져 버리듯 던져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 외에 오늘날에도 세계 처처에는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한 채 노예처럼 연명하며 살아가는 지구촌의 이웃들이 의외로 많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벡성들이 때때로 애굽의 과일와 고기 가마를 그리워 한 것을 보면 저들은 비록 노예였지만 먹을 것은 먹으면서 노예로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노예에게는 자유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야 했다. 

어느 날 호렙 산에서 양떼를 치던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이 붙고 있으나 사라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모세는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고자 하였다. 그 때에 하나님은 모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하고 계셨다. 그리고 모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셨다. “모세야 모세야”하나님은 그의 발의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은 “나는 네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마음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 때 하나님은 차근 차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세에게 일러 주셨다. 


백성의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
7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있다.
내 백성이 그들의 감독자들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내 백성의 근심을 안다. 

여기에 보면 ‘내 백성’이란 말씀을 하고 계신다. 지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노예로 그 극심한 고생을 하며 연명하며 버티며 죽지 못해 살 듯이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하나님은 저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 백성의 고통과 부르짖음과 근심을 보고 듣고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없지 않다. “하나님이 내 형편, 내 가정의 형편, 내 집안의 형편을 아실까. 과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고 계신걸까.” 우리가 찬송할 때에 무어라고 찬송하는가 

“내 부르짖음 들으시고 감싸주시는 
영원히 주 찬양합니다. 내 삶을 다해”

우리가 부르짖으면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라도 그 부르짖음을 듣는 법이 아닌가. 그런데 하물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삼라만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생명의 구주로 보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된 우리들의 부르짖음을 어찌 들어 주시지 않겠는가.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줄 아비가 있느냐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이나 전갈을 잡아 줄 아비가 있겠느냐 하물며 너의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것으로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지 않나. 정상적인 부모라는 자녀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이 왜 43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외면하시듯이 종살이, 노예생활의 애굽 땅에 내어 버려 두셨는가하는 질문을 누구라고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연단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철이 철을 연단한다고 하였다. 독일의 쌍둥이 로고 제품의 칼이 주부들에게 인기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성능, 강도, 내구성, 신축성, 날의 예리함이 다르다. 1731년부터 요한 페테 헹켈스에 의해 시작된 회사는 거의 3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칼, 가위, 스픈, 포크, 스케이트, 스키 등 무려 100여 가지의 제품을 생산하여 세계 120여개 국가에 수출한다. 적당한 열을 통과하면 숯이 되고 말지만 엄청난 열을 통과하고 나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2000년, 위구르 고비 사막에서 발견된 ‘푸캉 펠라사이트’라고 이름 붙여진 운석은 미국 시장에서 23억에 경매되었다. 햇빛을 받으면 그 아름답기가 참으로 영롱하다.

올 2020년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난세(亂世)를 맞아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같이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보아도 그렇다. 정치, 경제, 외교, 군사, 금융, 부동산 정책, 병원, 요양원, 의사 수급체계의 마찰, 의료 환경, 방역, 지쳐 있는 간호, 방역, 의료계, 학생들의 학교생활, 직장인의 직장 생활, 사업, 무역, 항공 산업, 관광 산업, 학원 경영, 세미나, 대형 집회 등등 그 어느 것 하나 편안한 분야가 없다. 

이 고난의 때를 잘 감당하는 인생들마다 정금처럼 빛나게 인도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보고, 듣고, 안다”고 말씀하셨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이 그 길을 아시며 있는 곳을 아시나니 이는 그가 땅 끝까지 감찰하시며 온 천하를 살피시며”(욥28:23-24)라고 말씀하셨다. 그 하나님은 “바람의 무게를 정하시며 물의 분량을 정하시며 비 내리는 법칙을 정하시고 비구름의 길과 우레의 법칙을 만드셨음이라”(욥28:25-26)고 하셨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때로 생각과 뜻을 돌이키신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백성들의 간구에 귀 기울여 주신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시고, 부르짖음을 들이시고, 근심을 아신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365장, 
“마음 속에 근심 있는 사람”가사를 보라.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눈물 나며 깊은 한숨 쉴 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은밀한 죄 네게 있더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괴로움과 두려움 있을 때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주 예수께 아뢰라

죽음 앞에 겁을 내는 자여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하늘나라 바라보는 자여 주 예수께 아뢰라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백성을 고난에서 건져내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을 설명할 때에 지정의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이 부르짖으면 들이신다. 인간이 부르짖는 주파수를 하나님은 알아들으신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 들으신다. 지난 번에 일곱 쌍둥이 사진을 보았다. 이웃은 몰라도 일곱쌍둥이를 키우는 엄마나 아빠는 목소리만 들어도 일곱 쌍둥이 중에서 몇째의 목소리인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지구 77억 명이 넘는 인구의 각 사람의 모든 형편을 아신다. 뿐만 아니라 고난과 고통의 현장에서 건져 내시고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평새토록 흙수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다. 흑수저와 금수저를 나누는 것은 사람이다.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인생들을 그렇게 구분하지 아니하신다. 

8절을 보라. 하나님은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 가려 하노라”고 약속하고 계신다. 

3,500년전에 호렙산 떨기나무에 불이 붙는 듯한 환상 앞에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고 그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오늘 우리도 믿고 따르고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미쁘시다. 하나님은 하신 말씀을 이룩하신다.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이시다. 

고난 당하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다른 계획, 다른 뜻, 다른 섭리가 있으시다. 시편 119편 71절에 보면 시편 기록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다음 말씀에 보니까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시119:72)라고 고백하였다. 이 시편 기록자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는 천천 금은보다 그에게 좋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가치와 부활 복음의 능력을 깨달은 사도 베드로는 거듭나게 하시고 소망을 갖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찬송하면서“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고 선언하였다. 

다시 욥기에 보면 고난 극복의 사람 욥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가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고 고백하였다. 사랑하는 백성들이 당하는 고난과 겪는 고통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내려오셔서 인도하시고 아름다운 땅으로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동행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반드시 함께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바로 왕 앞으로 보내서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때 모세는 그럴 자신이 없다도 부인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12절에서 분명하게 모세에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있으리라.”
“내가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것이다.”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가 될 것이다.”

출애굽의 목적은 노예 생활이 불쌍하니까 단순히 풀려 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저들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출애굽한 광야의 호렙 산 기슭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과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반드시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라는 445장 찬송의 가사가 무엇인가.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 않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 없네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늘 동행하시는 주님을 믿고 담대한 마음으로 승리하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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