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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잠23:22-26) 2015. 5. 10 어버이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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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성래
지성래
작성일 15-05-10 15:55 조회 19,613 댓글 0
 
네 부모를 즐겁게 하라(잠23:22-26)       2015. 5. 10 어버이주일

어느 지방 도시에서 시골 길을 운행하는 시외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버스 기사가 정거장에 잠시 섰다가 타는 손님이 없기에 막 출발하려던 순간, 승객 한 사람이 저 만치에서 버스를 향해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기사님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저기 할머니 한 분이 못 타셨는데요?" 버스 기사가 뒷거울로 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에 짐 보따리를 가득 인 채 뒤뚱거리며 힘겹게 걸어오시는 할머니 한분이 계셨다. 할머니는 버스를 향해 최선을 다해 걸어오셨지만, 연세도 워낙 많으시고 무거운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셔서 매우 느린 걸음으로 오고 계셨다.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기다릴 겁니까?" 몇 몇 승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승객들 중 몇 사람은 갈 길이 바쁘다며 버스가 출발하길 재촉했다. 그때 버스 기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죄송합니다!" 버스 기사가 자기의 어머니이시라고 말하니 승객들은 더 이상 그냥 가자는 재촉을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되였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 안에 앉아 있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할머니가 이고 있던 짐 보따리를 받아 든 청년은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빠른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박수를 치자 승객 모두의 박수가 이어졌다. 물론!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청년의 할머니도 아니었다.
 
누가 쓴 글인지 알려져 있지 않은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전해 온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호미를 쥐고 허리가 끊어지도록 온 종일 쭈그리고 앉아 밭을 매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고된 일 끝에 찬 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 걸터앉아 끼니를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 겨울 꽁꽁 언 얼음을 깨가며 그 차가운 시냇물에 맨 손으로 빨래를 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난 괜찮다 배부르다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라.” 더운 밥 맛난 반찬 그렇게 자식들 다 먹이고 누룽지로 허기를 달래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가 다 해지고 갈라져서 이불에 긁히는 소리가 나도,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게 닳아 문들어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허구헌 날 주정을 하고 때로는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고 철없던 자식들이 엄마 속을 썩여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친정에 다녀오고 싶다.” 그런 말씀을 하셔도 그것이 그냥 엄마의 넋두리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할머니 사진을 손에 들고 소리죽여 우는 엄마를 보고도 아 ! 그 눈물의 의미를 이 속 없는 딸은 몰랐습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낡은 액자 속 사진으로만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지금에서야 비로소..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인 줄 이제야 뒤 늦게 깨달아 알았습니다.
 
성경은 부모 공경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하다. 기독교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 말씀에 순종하고 부모님을 즐겁게 잘 모실 것을 강조하는 종교 중의 으뜸이다. 십계명 중에서 인간에 관한 계명 중의 첫 계명인 제 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가르친다. 이 세상의 모든 어른을 공경하여야 하지만 특별히 제 부모를 공경하여야 한다. 제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자녀라면 어찌 남의 부모를 귀하게 여길 줄 알까.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잠1:8-9)고 하였다. 신명기 28장 50절에 보면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인간에게 임한 저주의 상태라고 경고하였다.
 
올해 가정의 달이 시작되는 첫 날에 30대의 남매가 60대의 제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 졌다. 경남 사천시에서 일어난 범행이다. 아들은 집 안 마당에서 아침 6시 경에 아버지를 전기 충격기를 사용해 넘어뜨리고 가스분사기를 얼굴에 분사한 뒤 각목 등으로 자기 아버지를 마구 때렸다. 딸은 철근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곁에서 함께 폭행하였다. 이들 남매는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아 가지려고 그런 패륜적인 행동을 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아들딸과 범행에 동조했던 부인 A씨는 현장에 있었지만 직접 남편을 폭행하지는 않았고 마음이 바뀌어 아들과 딸의 범행을 만류하고 112에 사건을 신고하면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 졌다.
 
경상남도 마산에서는 고장 난 물건을 고쳐서 푼돈을 모은 아버지가 은행을 믿지 못하여 집안의 라면 상자 속에 오래도록 그 돈을 모아 두었다. 그런데 그 돈 1억 1600여 만 원을 몽땅 훔쳐 가지고 달아났던 아들이 붙잡혔다. 18살 난 아들은 친구와 함께 열쇠 수리공을 불러다가 집안의 창고 문을 뜯고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 이 못된 아들은 훔쳐낸 아버지의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고 금팔찌도 사서 손목에 차고 며칠 만에 1700만원을 탕진하고 남은 돈을 새로 산 오토 바이 가방 안에 감추어가지고 돌아다니다가 신고를 접수한 경찰에 무면허 운전자로 붙잡힌 것이다.
 
세상이 점점 악해져간다. 제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제 부모를 학대하고, 제 부모를 죽이려고 음모하는 이 극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성경은 제 부모를 어떻게 공경하며 살아가라고 교훈하는가. 본문 말씀에 보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며 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제 부모에게 청종하고 귀히 모시라.
22절,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왜 자녀가 제 부모를 공경하여야 할까. 물론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나의 생명을 이 땅에 낳아 주신 어머니 아버지의 은혜를 깨달아 제 부모를 공경하고 나를 사랑으로 낳아 키워 주신 부모님께 공경하고 부모의 가르침을 청종하는 것은 마땅한 자녀의 도리이다. 부모의 가르침에 청종하고 특히 연세 들어가시는 늙으신 부모를 경히 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부모 공경을 강조한다. 이는 마땅한 인간의 윤리이며 도덕이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부모 공경은 그런 정도의 차원을 뛰어 넘는 것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부모 공경의 가르침은 곧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신앙과 믿음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효자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은 인간으로 그를 보내실 때 분부하신 사명을 온전히 다 이룬 효자였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 까지 순종하신 효자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  육신의 아버지 요셉과 자신을 이 땅에 낳아주신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자랑스러운 효자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그 고통 속에서도 제자 요한을 향하여 “보라 요한아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어머니 마리아의 여생을 제자이며 이종 사촌인 요한에게 부탁하고 돌아 가셨다.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을 떠나시기 전 까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요셉의 빈자리를 채우며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도 맡아 하며 여러 동생들을 돌보고 어머니를 잘 모셨던 효자였다.
 
십계명의 제 5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가르침은 인간의 생명과 그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탕에 둔 강조이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다. “네게 준 땅”이란 말씀이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주어져 있는 그 모든 삶의 정황들이 돌아보면 그 어느 것 하나라도 하나님이 나의 삶에 혜택으로 허락하지 아니하신 것이 없다. 가령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한 반도는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반도 국가이다. 이 땅에서 인간이 자리를 잡고 살아오면서 오늘 날의 문명국가를 건설하기 까지 별의 별 우상 숭배를 다 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오늘 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눈이 띄어 지고 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이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간섭이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총이 아닌 것이 단 한 가지도 없다. 또한 “네 생명이 길리라”는 말씀 중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붙어 있는 이 생명의 주인이 나 자신인가. 아니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한 인간이 어머니의 태에서 자라나 이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부터 마지막 육신의 숨을 거두기까지 숨을 쉬며 살고 심장의 피가 고동치며 살아가는 그 모든 생명의 근원이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런 나의 생명을 부모님을 통하여 이 땅에 허락하신 하나님과 부모의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식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부족한 자식인가. 그러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가르침은 천번 만번 강조하여도 지나친 말씀이 아니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코와 입 사이의 부분을 인중이라고 한다. ‘인중’(人中)이란 인간의 중심이 바로 그곳이란 말이다. 인중이란 사람 ‘인'(人)자와 가운데 ‘중'(中)자를 사용한다. 인간은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음식을 먹고 마심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이 보존된다. 그러므로 호흡 있음을 감사하고, 무엇인가 먹고 마실 수 있는 이만한 하루의 건강과 먹을거리가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크나큰 축복인가. 이처럼 부모 없이 주어진 생명 없음을 깨달아 제 부모를 공경하고 제 부모의 가르침에 청종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강조는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들딸들에게 저들이 아주 어려서부터 제 부모에게 청종하고 제 부모를 무시하거나 경히 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고 공경하고 제 부모의 말씀에 청종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가진 자녀들로 가르쳐 훈육하고 양육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
 
플래쳐 H. 스위프트의 책,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교육>에 보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유태인 가정교육의 다양한 내용과 함께 여러 성경 구절들을 인용한다.
“길들이지 않은 말은 사나워지고 제 멋대로 자란 자식은 방자해진다.”(집회서30:8)
“자식이 젊었을 때에 길을 잘 들이고 어릴 때부터 회초리로 키워라. 그렇지 않으면 고집만 자라서 말을 안 듣게 되고 부모에게 큰 고통을 안겨 줄 것이다.”(집회서30:12)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느라”(잠13:24)
“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라.”(잠19:18)
결국 아들딸을 엄격한 가르침으로 가르쳐야 할 제 때에 가르치지 못하면 그 아들딸들이 커서 제 부모를 공경하기는커녕 부모에게 슬픔이 되고 괴로움이 되는 자녀가 되고 만다는 경고의 말씀인 것이다.
“딸이 있거든 정숙하게 기르되 언제나 엄격하게 다스려라.”(집회서 7:24)
“자식의 응석을 너무 받아 주다가는 화를 당하게 되고 자식하고 놀아만 주다가는 슬픔을 맛보게 된다.”(집회서 30:9)
부모에게 청종할 줄 아는 자녀들로 가르쳐 놓아야 나중에 그 아들딸로부터 공경 받는 부모의 노년기를 살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진리를 따르는 의롭고 지혜로운 자녀의 삶을 살아가라.
23-24절에, “진리를 사되 팔지 말아라, 지혜와 명철과 훈계를 귀히 여기고 버리지 말아라, 의인의 삶을 살아라.” 왜 이런 강조를 반복하는 것일까. 제 부모를 공경하고 제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가 되게 하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나 욕망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그런 진리의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자녀들로 양육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아들딸로 인하여 공경 받고 효도 받을 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운 아들딸을 길러낸 부모의 존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각 분야에서 출세하여 0.1%의 지도자 행세를 하던 유명 인사들 중에서 그 명성이 땅에 추락하고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검찰청에 불려 들락거리며 밤샘 수사를 받는 이들의 모습을 보라. 그들에게 연세 많으신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 부모가 그 아들딸들의 모습을 보며 자랑스러워하시고 기뻐하실 수 있을까. 성공도 좋고, 출세도 좋고, 재물 많은 것도 좋고, 권력이 많고, 사회적인 지위가 대단하고 국가적인 각 분야의 최 일선에 서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진리를 팔아 버리는 인생이 되면 안 된다. 지혜나 명철이나 훈계를 팔아 버리는 경솔한 인생을 살아가면 안 된다. 항상 흐트러짐이 없이 세상을 의롭게 살아가는 아들딸이 되어야 제 부모에게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인생의 무서운 덫에 걸리지 않고 뱀보다 더 지혜로운 인생으로 삼가며 절제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그를 낳은 아비에게 큰 기쁨이 되고 그를 낳은 어미에게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24절의 ‘의인’(義人)이란 지혜와 명철을 얻기 위하여 애 쓰고 친히 그런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을 말씀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많은 후손들이 태어나고 그 많은 후손들이 골고루 영화로운 삶을 살아서 부모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생의 최고의 축복으로 여겼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10:1)고 하였다. 솔로몬의 시편이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편 127편에 보면,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시127:4-5)고 하였다.
 
주기철 목사가 목회하던 평양 산정현 교회에 유계준(1879-1950)장로가 있었다. 그는 평남 안주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거부였지만 재산이 다 기울고 돌아가시자 13살 때부터 유계준은 집을 떠나 상점의 종업원으로 일하였다. 나중에는 친히 사업으로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실했으나 술만 먹으면 부인을 때리고 술주정을 하고 싸움만하면 치료비를 도맡아 물어줘야 했다. 그는 예수 믿기 전 23살 때까지 평양의 깡패였다. 평양 신학교의 설립자인 마팻(Samuel A. Moffett, 1864-1939)선교사를 때리려고 둘러쌌는데 그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 큰 감화를 받고 깡패 조직을 해산시키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평소에 가까이 지내는 한석진을 찾아가 그 선교사에게 대하여 물었다. 그는 미국에서 박사까지 마친 석학인데 조선에 와서 선교하는 훌륭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유계준의 부인은 남편에 대해 회고하기를 "중생이란 뜻이 무엇인지를 남편을 보고 알게 되었어요. 예수 믿기 전에는 맹수 같았는데 복음이 들어가자 사람이 변해도 어찌 그렇게 변할 수가 있어요"하고 남편의 변화를 인정하였다. 천부적으로 효자였던 그는 예수를 믿자 홀어머니를 모시며 동생 유계삼을 평양으로 불러 한집에 살면서 동생을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숭덕학교 교사가 되게 하였다. 결혼 6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자 부인은 새벽마다 산정현교회에 가서 기도하여 6년 만에 장자 기원을 낳았다. 그는 후에 미지림 교회를 건축하였고, 45세 때에는 산정현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주기철 목사가 옥중에 있을 때에 그 가족들에게 늘 쌀과 먹을거리를 보내서 돌보아 주었다. 유계준은 매사에 부지런하여 상당한 재력도 있었으며 숭덕학교를 세워 수많은 인재들을 양성하였다. 민족정신이 투철한 그는 상해 임시정부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한 그때 생활이 극빈한 순교자들의 가정을 은밀히 많이 도왔다. 주기철 목사님의 가정도 꾸준히 많이 도왔다. 그는 일제 말엽 강행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거부로 많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믿음생활을 하던 유계준 장로는 가족들을 남쪽으로 내려 보내고 자기 혼자 끝까지 교회를 지키겠다고 남았다. 북한군이 산정현 교회를 가마니 공장으로 내어 놓으라고 하자 성도들의 헌금으로 건축된 교회를 그렇게 사용할 수 없다고 거부 하였다.  6.25 전날 밤 괴뢰군에게 잡혀 연행되었고 그 해 9월 달에 대동강 언덕에서 72살에 총살당하여 순교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에 이 순교의 현장에 있었던 한 청년이 살아남아서 남한에 와서 전하면서 세상에 알려 지게 되었다.  말씀대로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대가는 총살당하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은 그의 자손들에게 이어졌다.
 
유계준 장로는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 유기원 장로는 국립의료원장을 역임했다. 차남 유기형 장로는 부산의대 교수를 지냈다. 역시 의사인 삼남 유기선 장로는 부산에서 신앙 생활하였다. 사남 유기천 장로는 전 서울대 법대 학장과 서울대 총장을 역임했으며 사재 30억 원을 모교에 장학기금으로 기부하였다. 특히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역시 의사인 오남 유기진 장로는 월남하기 전까지 장기려 박사와 함께 평양기독병원에서 근무했던 당시 몇 안 되던 외과 의사였다. 그는 월남 후 포로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일했으며 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북미기독의료선교회를 창립했고 의사였던 부인 고난경 권사와 함께 시카고 한인장로교회를 잘 섬겼다. 또 장녀 유기옥 권사는 서울 누가 의료원 원장이었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거주하고 있는 육남 유기묵 장로도 의사이다. 저들 팔남매는 여섯 명이 의사가 되었고, 약사이며 둘째 딸인 유기숙 권사는 국무총리를 지낸 이한빈 박사의 부인이며 전 숭실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100명이 훨씬 넘게 번창한 유계준 장로의 후손들은 사회 각계 분야와 나라 안 밖에서 유명인사로 활동하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살아가는 자의 후손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부모가 제 아들딸에게 훈계하며 진리를 가르치고 자녀들은 제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복 중의 복인 것이다. 이는 가정이 번영하고 가족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근본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하므로 평생토록 우상만 숭배하던 아버지 데라의 울타리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요구에 순종하므로 모리아 산 정상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결박당하도록 거역하지 않는 순종으로 효자 이삭의 모습을 역사 속에 드러내었다.
 
야곱은 우여곡절 많은 생을 살아가면 그 때 그 때마다 삶의 결정적인 위기를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앞에서 응답을 받는 지혜로운 인생의 길을 걸어갔다. 야곱이 부모의 곁을 떠나 외삼촌의 집을 향하도 도망치던 그 밤에 루스 광야에서 베고 자던 돌을 세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집 즉 벧엘이라 이름하며 하나님 앞에 서원 기도를 드리던 장면을 보라. 긴긴 처가 살이를 마치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고향을  향하던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기도하며 천사와 씨름하던 그 밤의 기도 장면을 보라. 야곱은 항상 위기 때마다 진리의 편에 서고, 의로운 자의 편에 서기 위하여 영적 씨름을 벌이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창세기 35장에 보면 야곱이 외동딸 디나가 부끄러운 일을 당하여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날들을 지내던 중에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그를 위로 하시는 경험을 한 장면이 나온다. 야곱은 집안에 모든 우상들을 버리도록 하고, 몸을 청결하게 하고, 옷을 새것으로 갈아입도록 하고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 야곱은 가족들이 숨기고 있던 이방 신상과 귀의 귀고리까지 다 받아서 세겜 근처의 상수리나무 아래에다가 모두 묻었다. 그리고 과거에 돌 베게를 세우고 기름 부어 가며 기도하고 서원 하던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그 곳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엘벧엘’이란 ‘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렇다. 야곱의 체험처럼 하나님 체험이 분명한 아들딸들이어야 하나님 앞에서 제 부모에게 공경하고 제 부모를 기쁘게 하는 자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제사드린 야곱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그리고 장차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한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반복하여 약속하여 주셨다. 그 아들들 중에 요셉과 같은 시대적인 인물이 자라나고 요셉은 당대에 최고의 국가인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존귀한 인물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후손 들 가운데 모세와 같은, 여호수아나 갈렙과 같은, 기드온과 사무엘과 다윗과 같은 역사적인 후손들이 탄생한 것을 보라. 진리 안에 살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자의 삶을 살면 하나님은 저들로 하여금 그 낳은 부모에게 큰 즐거움이 되게 하시고 기쁨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너를 낳은 네 부모를 기쁘고 즐겁게 해 드려라.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는 자녀라면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앞에 전개되는 하나님의 길을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는 연세 들어가시면 그 어떤 부모라도 크게 세 가지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 첫째는, 아픈 곳이 많아진다. 눈도 침침해 지고 귀도 잘 안 들리고 치아도 시원치 않아 지고 허리는 점점 약해지고 팔 다리가 쑤시고 무릎에 기운에 빠진다. 어깨도 아프고 팔 다리도 아프고 다리가 붓고 전신이 아프고 쑤시고 힘들어 진다. 둘째는, 쉽게 외로움을 타시고 쉽게 노여워하신다. 잠을 청해도 잠은 적어지고 밤이 길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이 생각 저 생각 외로움만 많아지고 때로는 섭섭한 생각이나 노여움만 깊어 간다. 셋째, 허기를 자주 느끼신다. 몸이 허해지니 쉽게 허기를 느끼게 되고 입맛도 예전 같지 않고 치아가 약해지니 음식을 씹어도 예전 같지 않아진다.
 
부모 자신이 성공적으로 살고 여력 있고 능력 있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소외도고 병약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어른들도 적지 않다. 부모께 효도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길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는 일이다. 부모에게 일정한 용돈과 물질로 잘 해 드리고, 좋은 보약을 해 드리고, 좋은 여행 보내 드리고, 자주 찾아뵙고, 잘 모시는 것 다 좋지만 부모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신앙을 갖고 천국 신앙 가운데 그 마음에 아들딸로 인한 흡족함과 만족함과 자랑스러움을 갖고 살아가시도록 모시는 것이 참 부모 공경이 아니겠는가.
 
프랑스 역사에 69명의 왕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백성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왕들은 단지 3명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들의 특징은 세 사람 모두 친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난 인물들이었다. 어머니의 젖인 모유가 소중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소중한 것이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23:26)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제 부모의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아들딸이야 말로 효자 인생, 효녀 인생이 아닐까. 그러므로 아들딸이 세상의 각 분야에서 성실하게 자녀의 도리를 다하고 부모에게 대견함과 자랑스러움과 기쁨과 즐거움이 되는 삶을 성실하게 가꾸며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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