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억하신 사람(행10:1-6) 2018. 1. 7 신년주일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평생토록 잊지 않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다시는 기억에서 그 이름과 그와의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좋은 기억으로 기억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악연이었고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상하고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해 오는 그런 추억의 기억으로 맺어진 관계라면 그 어찌 기억하고 싶겠는가.
그 기억의 관계가 가족 관계라면 더욱 그렇고 성도들과의 관계라면 더군다나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기억과 망각의 강 이편과 저편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때로 잊어 주시기도 하시고 반대로 분명하고 완전하게 기억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시편 103편 12절에 보면,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들이 지은 죄와 악을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용서해 주시고 잊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와 악을 기억하여 책망하시고 공의로 판단하시고 심판하시는 주님이시다.
요한계시록 22장 15절에 보면,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무슨 말씀인가. 이렇게 죄악 되게 살아 온 자들을 기억하셨다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성 밖으로 내어 쫓겨나는 구원 받지 못하는 무리들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러나 한편,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았던 선한 행실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기억하여 상급을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보면,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주인공인 이달리야의 백부장 고넬료는 하나님이 기억하신 사람이다. 어느 날 고넬료는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기도하고 있었다. 제 구시란 오늘 날 우리 시간으로 하면 오후 3시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씩 기도한다. 아침 9시,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에 기도한다. 고넬료는 그 정해진 기도시간에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고 하나님의 천사의 방문을 체험하였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로마인이었다. 그는 가이사랴에 주군하고 있던 황제의 관저를 호위하는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유대인들처럼 하루 세 번씩 정해진 기도시간에 철저히 기도생활을 하였는지는 궁금한 일이다. 그가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는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기도하고 구제하며 온 가족이 신실한 믿음으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은 없다. 분명한 사실은 그는 경건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던 로마의 백부장이었다는 점이다. 그런 그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밝히 보았다. 여기서 ‘환상’이란 ‘분명한 의식을 갖고 어떤 광경을 또렷하게 보는 것’을 말한다. 이 ‘환상’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실 때에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사도행전 9장의 10절과 12절에 보면, 다메섹 성의 아나니아라는 선지자와 다메섹 체험으로 눈이 안 보이게 되었던 사울이 동시에 ‘환상’을 본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도행전 10장의 9-16절까지에도 보면 욥바에 선교 여행 중이던 베드로 사도는 정오 시간에 기도하던 중에 환상을 보았다. 환상을 영어로는 ‘vision'이라고 한다.
고넬료가 본 환상은 무엇인가.
기도 중에 환상을 밝히 본 고넬료에게 천사가 말하였다. “고넬료야” 고넬료는 두려운 마음을 갖고 질문하였다.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그 때 천사가 말하였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천사가 고넬료에게 해 준 말 가운데 보면,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 얼마나 기쁘고 복되고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 나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내 선행을 기억해 주기만 해도 기쁜데 하나님께서 평소에 생활하던 고넬료의 구제 생활과 기도 생활을 기억하고 계시다니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가.
국가 발전에 공헌한 일이 인정되면 세월이 오래 지난 후에 그의 후손에게라도 국가적인 훈장을 추서하는 경우를 본다. 이처럼 ‘기억한다’는 것은 개개인의 선행과 악행이 골고루 역사 가운데 기억되고 평가되고 상벌이 결정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사를 행한대로 판단하고 기억하여 심판하신다. 요한 계시록 22장 11-12절에 보면,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셨다.
과연 고넬료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 되었다.”고 까지 칭찬하신 것일까.
온 집안이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
부부 중에도 남편은 믿음 생활 하는데 반대로 부인이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시원치 못한 경우가 있다. 반대로 어떤 집은 아내는 언제나 성령 충만하고 믿음이 분명한데 남편은 영 세상으로만 겉돌고 “나중에 아내 치마 자락 붙잡고 천국 가겠다.”고 신앙생활을 농담처럼 여기는 이도 있다. 또 어떤 집은 부모는 열심인데 아들딸들을 신앙으로 세워 놓지 못한 집들도 있다. 반대로 어떤 집은 아들딸 며느리 사위는 분명한 믿음이 있는데 연세 들어가시는 부모님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아서 늘 안타까워하며 기도하며 지내는 가정도 있다. 그러므로 고넬료처럼 온 집안이 다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믿음으로 살아가고 예수를 잘 믿으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100명의 부하를 둔 지휘관이지만 그 당시 가이사랴 지역은‘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던 곳이라 예하 부대 지휘관들의 권한이 막강하였다. 그런 장교 신분이었던 고넬료는 군대 생활에만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며 경건하게 신앙으로 살아가던 고급 신분의 장교였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장교가 된다는 말은 무엇인가. 동서고금에 군대의 지휘관이 되는 것은 무관으로서 일정한 실력과 역량을 인정받지 못하면 육해공군의 장교가 될 수 없다. 이처럼 고넬료는 2천 년 전의 그 당시에 대 로마 제국의 분명한 신분 보장을 받는 백부장이었다. 그런 그가 우상을 숭배하거나 세상적인 지위만 의지하고 자랑하는 장교가 아니라 온 집안 식구들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신앙생활을 지켜 가고 있었다. 고넬료는 유대교의 입적한 유대교 신자는 아니었다. 사도행전 11장 3절에 보면 그는 할례를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계기에 의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늘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갔다. 마치도 마태복음 8장과 누가복음 7장에 소개된 병든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가버나움에 계시던 예수를 찾아 갔던 백부장의 모습과도 같다.
새로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아직 온 가족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가정이나 양가의 일가친척이 있다면 온전하게 모두 다 구원 받는 은혜가 임하기를 소원한다. 부모 형제 자녀 일가친척들이 우상 숭배나 이단이나 사이비나 미신이니 어리석은 신앙에 붙잡혀 살아가지 않고 진리를 깨달아 알고 믿고 주를 따르는 온전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한다.
37년 전인, 1981년 2월에 ROTC 소위로 임관하였다. 4개월간 전남 광주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마치고 6월 달에 전방 철책선을 맡는 GOP 경계 부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하였다. 낮에는 틈틈이 불모지 작업을 하고 밤에는 밤새도록 교대 근무하며 휴전선을 지키는 독립 방카부대였다. 불모지 작업이란 휴전선 동쪽 끝과 서쪽 끝까지 155마일의 거리를 풀 한 포기 나지 않게 관리하고 짐승의 발자국 하나라도 분명하게 식별이 되도록 일일이 갈퀴질을 하고 빗질하듯이 쓸고 다듬는 작업을 말한다.
그 당시 나는 23살짜리 젊디젊은 소대장이었다. 우리 소대는 제 3 땅굴을 맡아 철책을 경계하는 독립 부대였다. 산꼭대기의 도라산 정상에는 중대 본부가 있고 그 산 너머에 대대 본부가 위치해 있었다. 도라산 정상에는 수십 개의 확성기가 설치되어 대북 방송을 늘 하였다. 성탄절기가 되면 북녘 하늘을 밝히는 성탄 트리를 아름답게 장식하여 밤새도록 형형색색의 불빛을 환하고 찬란하게 비추이고는 하였다.
그 당시 1사단의 사단장은 나중에 장로가 된 김을권 소장이었다. 육사 13기인 그는 1사단 사단장을 지내고 후에 논산 훈련소 소장직도 역임하였다. 크지 않은 키에 분명하고 또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군인다운 지도자의 위용이 풍겼다. 한 번은 최전방 철책 소대에 이기백 군단장과 김을권 사단장이 여러 명의 참모들과 함께 우리 소대를 방문하였다. 나중에 합참의장 까지 지낸 이기백 장군은 불교 신자였지만 김을권 사단장은 분명한 신앙을 가진 기독교 신자였다.
소대원들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대 식당에서 배식판에 배식을 받아 소대원들과 함께 저녁 식사도 같이 하고 부대 시찰을 마치고 떠났다. 나에게 “사관학교를 나왔느냐 ROTC출신이냐”고 물었다. “전공이 무었이냐”고도 물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였다”고 대답하자 “여긴 기도하는 소대장이 있으니까 안전사고 같은 것은 염려 하지 않아도 되겠구만.”하면서 악수해 주고 지프차를 타고 뽀얀 먼지를 날리면서 돌아갔다. 그 김을권 소장은‘세계 기독 장교회’(OCU) 회장도 지냈다. 그는 현역 시절에 가는 부대마다 교회도 여러 곳 건축하였다. 제대 후에는 20년 전인 1996년에 김포군 불당골이라는 마을에 아름다운 예배당도 건축하였다. 평소에 사 두었던 그 곳의 땅에 예배당을 건축하여 봉헌한 것이다. 그는 퇴역하면서 평생 모은 적금과 퇴직금을 모아가지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해서 하나님께 헌당한 것이다. 그들 내외는“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여 한 일일 뿐입니다.”라고 간증하였다. 최근에 들으니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 안에서 크게 복을 받고 산다고 했다.
그는 현역 장교 시절에도 늘 주일날이면 계급장 떼고 교회에 가장 먼저 나와 논산 훈련소의 훈련병들에게 주보를 나누어 주고 훈련병들의 손을 붙잡아 주고 악수하며 격려하고 예배당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렸다. 그는 늘 설교 말씀을 경청하고 받아 적고 은혜를 사모하였던 일화가 그 주변의 부대 장병들을 통하여 미담으로 전해진다. 백부장 고넬료! 그는 그 당시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건한 믿음을 갖고 있던 로마의 군인이었다.
백성을 많이 구제하던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기도 생활이라면 사람을 사랑하는 증거는 구제 생활이다.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 그 선행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졌고 하나님께서도 고넬료의 구제 생활을 주목하고 계셨다.
가난한 나라의 선교지에 방문할 때마다 마음에 가득한 충격과 기도 제목은“ 저들 가난한 아이들과 가난한 백성들이 어떻게 하면 굶주림과 헐벗음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UN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구 상에 13억 5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은 안전하게 마실 물의 혜택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23억명 이상은 하수구 시설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3억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고아이거나 집이 없이 배회하고 방황하며 지낸다. 3억 6천만 명의 어린이들이 날마다 굶주리고 하루 평균 3만 4천여 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림이나 질병에 방치된 채로 죽어간다. 지구 인구 중에서 7명 중의 한 명 꼴인 10억 명 이상은 저녁을 먹지 못한 채로 잠자리에 든다. 13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하루 평균 1,000원 미만의 돈으로 생활한다.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의 평균 수명은 44살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한 끼를 해결하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3%만이 글을 읽을 줄 안다. 여성들이 30분에 한 명꼴로 임신 관련 질환으로 죽어간다.
어느 마을에 물맛이 좋은 옹달샘이 있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물을 즐겨 길어다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옹달샘 주변의 땅 주인인 구두쇠 영감이 옹달샘 주변에 가시 울타리를 쳤다. 마을 사람들 중에 남들은 그 물을 퍼다 마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한 두 해 만에 점점 샘의 량이 적어지더니 몇 해 만의 그 물 샘이 완전히 마르고 말았다. 샘이란 것이 자꾸 퍼내야 더 콸콸 흘러넘치는 법인데 혼자 자기 집 식구들만 먹고 마시고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보니 그 좋던 옹달샘이 말라 버린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선교와 구제와 봉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는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곳이어야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교회는 성도들 간에 그리고 교회 밖의 세상 중에서 수많은 이웃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돌아보고 섬기고 나누고 베풀며 살아가는 곳이어야 한다. 개인도 그래야 하고 가족도 그래야 하고 속회도 그래야 하고 교회의 모든 기관과 부서가 그래야 하고 온 공동체가 그래야 한다.
잠언 19장 17절에 보면,“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은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면 그 선행에 대하여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시편 37편 25-26절에 보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고 하였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 보면 예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교훈해 주셨다.
하나님은 포도원의 열매를 모조리 다 따지 말고 가난한 자의 몫을 남겨 두라고 하셨다. 밀과 보리의 이삭도 가난한 자와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삭을 남겨 두라고 하셨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것이야 이처럼 우리의 생활 중에 일부를 나누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가장 처음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하는 경건한 신앙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증거이다.
출애굽기 23장 19절에 보면, “토지의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에 드리라”고 하였다. 쓰고 남고, 먹고 남은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 열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의 전에 드리라고 하신 것이다. 이 신앙이 필요하다. 이런 신앙이 귀하다. 그렇게 살아가는 가정이 잘되고 그 당대와 그 후손이 복을 받는다.
십일조 신앙도 그렇지 않나. 열의 하나를 드리면 아홉이 남는 것이 아니다. 열의 하나를 먼저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신앙은 물질을 드리고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의 중심과 고백의 전부를 드리는 신앙의 태도이다. 그렇지 않나. 오년, 십년, 이십년, 아니 평생을 지켜봐도 못 드리는 분들은 못 드린다. 늘 ‘주여 주여’ 하면서도 이 곳에 있는 털 한 가닥을 뽑아서 저 곳에 넣듯이 그렇게 발발 떨면서 늘 그렇게 사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가, 모든 가정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들이 되기릴 소원한다. 고넬료가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는 말씀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8장의 백부장처럼 부하가 병들며 모른 척하고 외면하는 그런 백부장이 아니었다. 그는 휘하의 모든 부대원들과 부대 밖의 주민들의 살아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 생활 까지도 눈여겨 돌아보면서 할 수 만 있으면 누군가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고 먹을 빵과 마실 우유와 입을 옷과 깔고 덮을 이부자리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이웃을 돌보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이웃을 그렇게 돌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계속하여 나라 안과 밖의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성탄 헌금, 추수 감사 헌금, 신년 헌금, 사순절 헌금, 고난 주간 헌금, 부활절 헌금, 맥추절 헌금 등 계속하여 드리는 절기 헌금들을 모두 다 모아서 고넬료처럼 이웃을 구제하고 복음이 전해지는 방편이 되게 하고 누군가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넓게 넓게 펼치는 그런 교회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항상 기도하던 사람.
고넬료는 구제와 기도 생활의 균형을 잘 이루며 주를 섬기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사랑의 실천인 봉사와 헌신과 구제가 다 귀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 생활하는 성도들을 주목하신다. 새벽에도 기도하고, 낮에도 틈틈이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고, 일어나서도 기도하고,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계속하여 기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슨 일을 하든지 매 순간마다 기도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기도에는 시간과 장소의 구분이 없다.
사도 바울은“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살기 위해서 육신의 숨을 계속 쉬듯이 기도생활도 게을리 하지 말고 숨 쉬듯이 꾸준히 계속하라는 말씀이다.
사무엘 상 12장 23절에 보면,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아니하겠다고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고 하였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 솔로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엘리야, 엘리사, 느헤미야, 에스라 이 모든 신앙의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저들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예수께서는 기도 생활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여러 차례 해 주셨다. 밤늦게 찾아 온 친구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이 없자 이웃집에 찾아 가서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였다. 이미 자녀들과 잠자리에 들었으니 내일 오라고 했다. 그러나 배가 너무 고파하는 친구에게 반드시 먹을 것을 마련해 주어야 하니 제발 일어나서 먹을 것을 좀 챙겨 달라고 강청하는 이웃의 요청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기도 생활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비유로 말씀해 주신 내용이다.
떼를 쓰면 들으신다는 뜻이 아니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간구하고 부르짖고 집중하고 매어 달리면 응답해 주신다.
고넬료는 어느 날 오후 세시에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았고 천사를 통하여 욥바의 해변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기도를 마친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두 사람과 경건한 부하 한 사람을 불러서 기도 중에 체험한 일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욥바로 보냈다. 욥바는 지금 이스라엘의 국제 공항이 있는 텔아비브 지역이다. 지중해에 연접한 아름다운 도시다. 고넬료의 심부름을 간 일행들이 다음 날 욥바를 향하여 길을 가다가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기 위하여 정오기도 시간에 머무는 집의 옥상인 지붕에 올라갔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사람들은 시장하게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 베드로 사도는 황홀한 체험을 하였다. 하늘이 열리고 한 그릇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네 귀퉁이를 맨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땅에 드리워졌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발 가진 짐승들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가득하였다. 그 때 소리가 들렸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두 번째 소리가 들렸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갔다. 베드로는 자신이 본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베드로를 찾고 있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급하게 기도를 마친 베드로는 지붕에서 집 문 입구까지 내려갔다.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자 고넬료의 하인과 부하가 대답하였다. 22절에 보면,
“우리 주인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기를 원합니다.”
베드로는 저들을 집안으로 불러 들여 음식을 대접하고 하루를 묵게 하였다. 그 다음 날 욥바에서 고넬료가 있는 가이사랴 까지 갔다. 베드로 사도가 도착하자 고넬료는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서 절하며 맞아 들였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일어서세요. 나도 사람입니다.”고넬료의 집안에 들어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서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교제하고 가까이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인 줄을 알지만 하나님이 환상 중에 지시하시고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하시기에 왔다.”고 대답하였다. 고넬료는 나흘 전에 체험한 환상 체험을 베드로 사도 앞에서 자세하게 간증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말씀을 모두 듣기를 원하였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애와 고난당하신 일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신 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증거하였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말씀을 인용해서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고넬료와 거기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고 하나님을 높였다. 베드로와 일행들은 저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고넬료의 가족과 그 주변 사람들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감사해서 베드로 사도에게 며칠간 더 머물면서 말씀을 전해 주기를 간절하게 간청하였다.
우리 모두 올 한해 고넬료와 같고 베드로와 같은 기도생활의 열매가 풍성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 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