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이것을 보았느냐(겔47:1-12) 2017. 7. 23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 문지방에서 흐르는 물이 일천 척, 일천 척, 일천 척, 일천 척 계속하여 흘러가는 환상을 보여 주셨다. 흐르는 물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그리고 더 이상 건널 수 없을 정도의 헤엄칠 만한 가득한 큰 물을 이루어 흐르는 장면을 보게 하셨다. 사천 척을 흘러간 물은 깊고 넓은 강물을 이루었다. 그 때에 주께서 에스겔에게 물어 보셨다.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주께서는 에스겔을 강가로 돌아서 올라오게 하셨다.
에스겔이 돌아올 때에, 보니, 이미 강의 양쪽 언덕에 많은 나무가 있었다. 그가 에스겔에게 일러주었다. 본문 8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주님이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 주신 후에 약속해 주신 말씀이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 때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강가에 늘 늘어설 것이다.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물을 칠 것이다. 물고기의 종류도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와 똑같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해의 진펄과 개펄은 깨끗하게 고쳐지지 않고, 계속 소금에 절어 있을 것이다.
그 강가에는 이쪽이나 저쪽 언덕에 똑같이 온갖 종류의 먹을 과일 나무가 자라고, 그 모든 잎도 시들지 않고, 그 열매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인데, 그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사람들이 먹고, 그 잎은 약재로 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에스겔에게 보고 듣게 해 주신 이 말씀의 교훈이 무엇인가.
어제 밤 이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글로 옮겨 쓰고 있는데 이 찬양이 생각나서 혼자 부르고 또 불렀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라는 찬양 말이다.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저 십자가의 강가로
내 주의 사랑 있는 곳 내 주의 강가로
갈한 나의 영혼을 생수로 가득 채우소서
피곤한 내 영혼위해
내 주의 은혜 강가로 저 십자가의 강가로
내 주의 사랑 있는 곳 내 주의 강가로...”
에스겔 47장의 환상은 40장부터 시작된 내용의 연속이다. 시대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젊은이들과 백성들이 많던 시절이다. 사로 잡힌지는 벌써 25년이 흘렀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무너 진지도 14년이 되었다. 그 때에 선지자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였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셨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고 남쪽으로 향한 성읍 같은 형상을 보여 주셨다. 놋같이 빛난 사람이 등장하여 에스겔에게 분명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 그것은 성전의 측량과 새롭게 주어지는 율법의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보여 주신 환상이 본문이다. 주님은 이 환상을 보여 주시면서 물으셨다.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성전에서 흘러서 스며 나오는 물.
예루살렘 성전의 정문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은 동쪽 오른쪽 남쪽을 거쳐서 북쪽으로 흘러 내렸다.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에 이르러 보니 그 물이 “오른 쪽에서 스며 나오고 있었다.” 여기 “흘러내리더라.” 그리고 “스며 나오더라”는 말씀이 1절과 2절 끝에 있다. 흘러내리는 것은 표현 그대로다. 흘러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오는 ‘스며 나오더라’는 상태는 스며 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세차게 솟구쳐 나오는 상태’를 말한다. 처음에는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내리던 물인데 점점 흘러가기 시작하니까 세차게 솟구쳐 나오는 물이 되었다. 이것이 솟아나는 물의 원리다.
에덴에도 그런 강이 흐르고 있었다. 창세기 2장 10절에 보면,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고 했다. 한번은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중국 황하강의 발원지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았다. 그 시작은 작은 물 샘일 뿐이다. 그런 작은 시작이 거대한 물줄기의 시작이었다. 태백지방 부흥회에 갔다가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를 방문해 보았다. 도시 한 가운데 작은 공원이 있고 그 중앙에 울타리 쳐져 있는 물 샘을 보았다. 깊고 검푸른 신비한 물 샘에서 천년만년 계속하여 물 샘이 콸콸 솟아나는 곳이었다. 그런 작은 물 샘에서 발원하여 한강의 근원이 되고, 낙동강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솟아나는 물이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나 점점 세차고 힘이 있는 강 줄기를 이루는 법이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받을 축복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해 주셨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
이 말씀은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큰 소리로 외쳐서 하신 말씀이시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는 장차 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시다. 이 날 이후로 사람들은 예수를 선지자다 혹은 그리스도다 하고 말하며 쟁론이 벌어졌다.
가정에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일도 그렇다. 우리 각 사람이 예수 믿는 생활도 마찬가지다. 성전 문지방에서 졸졸 흐르는 물과 같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 물이 계속하여 흐르는 중에 솟구쳐 흘러 나오는 그 상태가 계속되면 그 힘을 막을 힘이란 없는 법이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며 은혜의 힘이며 성령의 역사이다.
엊그제 금요일 오후에 시작된 교회 학교와 청소년 여름 성경학교의 과정은 저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모두 교회에서 자면서 토요일 오후까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준비하고 진행하는 부장님들과 교사들과 수고가 많았다. 교회의 이 방 저 방에 남학생 여학생 따로 나누어서 잠을 잤다.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모두 다 행복해 하였다. 집에 가면 훨씬 편한 침대가 있으련만 교회 마루바닥에 앏은 메트리스 위에서 잠자는 것을 기뻐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우리의 자녀들도 시편 84편의 고라 자손의 시편 고백의 심정을 체험하고, 배우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맞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집 중심의 삶을 고백하게 되고 하나님의 집에 와서 엎드려 기도하고 주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게 되는 것이다.
중앙 대학교 총장을 8년씩 두 번 16년을 역임한 여성 총장이 임영신(任永信,1899-1977)이다. 지금은 충남 금산인데 1900년대에는 전라북도였다. 임영신은 전북 금산에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집안에서 12남매 중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할머니와 부모님은 일찍이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중에 장로가 되었다. 어려서 부터 키가 컸던 임영신은 한학을 공부하다 말고 금산의 심광소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에는 자주 선교사들이 드나들고는 하였다. 1911년에 12살 된 임영신을 부모는 일제 정신대에 끌려갈 불안을 피하려고 시집을 보내려고 했다. 그녀는 울면서 부모를 설득하고 중매장이에게 말 대답을 하였다. 자기는 가문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태어나고 나라를 위해 태어났다고 대답했다. 어른들도 12살 된 딸의 또박 또박 대답하는 언변을 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기 언니가 예수를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가게 된다는 말을 듣고 언니에게 충고하였다. “매일 울고 먹지 말고 굶고 수척해 지면 결혼 길 막힐 것이니 기도하면서 그리하라.”고 언니에게 자문해 주었다. 언니는 동생의 말대로 했고 낮중에 최학삼 목사의 아들인 최용환과 결혼하게 되었다. 임영신은 15살에 전주 기전 여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그녀는 기독교인 여학생들의 소모임을 주관하고 기도와 신앙 활동을 잘 하였다. 그녀의 노력에 감동한 여학생들이 많이 그녀와 함께 기독교 신앙 활동에 참여 하였다. 그런 그녀는 1920년대에 태평양을 건너가서 미국 남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입학하여 유학 생활을 하였다. 그 당시에 14살 위였던 이승만, 나중에 대통령이 된 이승만(李承晩,1875-1965)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녀는 1932년 중앙보육학교를, 1941년에는 경성중앙유치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광복 이후 1945년 8월 대한여자국민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됐고 1946년 9월에는 오늘 날 중앙대학교의 전신인 중앙여자대학을 설립하고 학장과 총장을 지냈다. 그는 교육가요 기독교 여성 지도자요 독립 운동가요 애국자요 정치 지도자의 길을 평생 걸었다. 물론 한 사람의 생애에는 공과가 있다. 그러나 그녀는 평생 하나님을 경배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씨름한 여장부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던 임영신은 김활란, 모윤숙, 박마리아 등과 함께 가난했던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를 제대로 세워 가려는 불 타는 열심히 있었다.
언제부터 예수를 믿어 왔는가. 언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는가. 내 마음 의 성전 깊은 곳에서 졸졸 흐르기 시작한 이제는 스며 나올 뿐만 아니라 솟구쳐 흘러 넘쳐 나기 시작하는 그런 은혜 생활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넓고 깊은 강을 이루도록 흘러가는 물.
일천척, 이천 척, 삼천 척, 나중에는 사천 척을 측량하자 감히 쉽게 건 널 수 없는 넓고 깊은 강물이 되었다. 헤엄 칠 만한 물이 되었다. 처음 일천 척은 발목, 그 다음 일천 척은 무릎, 나중 일천 척은 허리에 차는 물이라고 했다. 어떤가. 나 자신은 어떤가 말이다. 세월이 이렇게 많이 흘러 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발목 정도의 자작 거리는 물가에서 서성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바지 단을 겨우 걷어 올린 상태에서 무릎 정도 차 오르는 물에 만족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허리 정도 찬 물에 만족하면서 그 물에 쭈구리고 앉아서 상체를 적시다가 말고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며 그 정도의 물가에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정도는 아닌가.
우리나라에는 과거에는 수영 왕 조오련 선수가 있었다. 지금은 우여곡절 많은 박태환의 시대이지만 말이다. 박태환이 대단한 선수이지만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Michael Phelps, 1985-)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마이클 펠프스는 15살 때인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6년 리우 올림픽 때까지 23개의 금메달을 탔다. 은 3, 동 2을 합하면 28개다. 그는 100, 200, 400, 800미터 모든 종목을 휩쓸고 지난 해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제 32살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다. 사실 펠프스의 리우올림픽 성공은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는 지난 해 올림픽 출전 전에 이미 도박 중독에 빠져 모아놓은 재산 상당부분을 날리고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2014년이 돼서야 선수 생활에 복귀했는데, 단 2년만에 이정도 실력을 회복했으니 수영 실력은 대단하다. 그의 재산은 기업 후원금과 광고비등 어마 어마 하다. 그러나 30대 초반의 그는 수영장 밖에서의 자기 생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4년에는 음주 운전으로 걸려서 18개월 보호관찰 형을 받은 적도 있다. 2009년에는 대마초를 피워서 3개월 출전 정지가 된 적도 있다. 그 후에도 일탈 행동이 계속되었다. 이는 마치도 복권 당첨자들의 나중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이전 만 못한 것처럼 말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천 척을 이루도록 흘러가는 성전 물의 환상은 이런 세계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주 안에서 점점 복되고, 주 안에서 점점 잘되고, 주 안에서 점점 은혜롭고, 주 안에서 점점 행복하고, 주 안에서 점점 사명감에 불타고, 주 안에서 점점 영혼육의 삶이 풍성한 은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 된 우리들에게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바는 황량하고 거칠고 메마른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는 삶을 기대하시는 것이다. 3절부터 5절까지에 보면 주께서는 측량하고 건너게 하시고 다시 또 측량하고 건너게 하시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발목 그 다음에는 무릎 그 다음에는 허리에 찼다. 그리고 다시 일천 척을 더 흘러 간 물을 측량하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 그 물이 가득하여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헤엄칠 만한 물이 되었다. 이것이 무엇인가.
은혜요 기적이요 축복이요 자랑이요 증거요 간증이 아닌가. 개인과 가정과 나라와 민족과 이 땅의 성도들과 교회의 앞날에 이런 풍성한 은혜가 넘쳐 나길 소망한다.
주 안에서 살며 내 심령에 흐리는 은혜의 강물은 절대로 잘 못되는 법이란 없다. 주 밖에서 잘되는 것은 잘 되도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주 밖에서는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출세하고 아무리 번성하고 아무리 창대하고 아무리 형통해져 보여도 잘 되는 것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주 안에 잘 되어야 진정으로 잘되는 것이다.
영혼이 먼저 잘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것이 복된 것이다. 맞다. 그렇지 않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라. 저 높은 꼭대기에서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곳까지 추락하는 인생들을 보라. 그러므로 너무 남들 잘되 보이는 것 부러워하면 안 된다. “나 자신이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점검할 줄 알아야 한다.
비가 내려야 하고 물이 있어야 자연이 사는 법이다. 물이 흘러야 땅이 산다. 강물이 흘러가야 도시가 살고 인생이 살고 세상이 살아난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이 환상을 통하여 성전 중심의 삶을 살아가도록 민족을 초청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은 비록 바벨론에 끌려 간 상태이고 예루살렘은 불탔고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지만 다시 회복의 날이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해 주시는 것이다.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온 물이 사천 척의 깊고 넓은 강을 이루어 사해까지 흘러 들어가 황무하고 죽어있는 땅을 기름진 땅으로 변화시켰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는 풍성한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다.(시 46:4;65:9;사 33:20) 그렇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한다. 다시 강물이 흘러가기 시작해야 한다. 바닥이 드러났던 메마른 땅에 풍성한 강물이 흐르고 또 흘러가야 한다. 우리 각 사람의 영혼에 심령에 그런 은혜가 임해야 한다. 구원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온 땅의 천하 만민의 가슴마다 흘러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그를 통한 죄 사함과 구원을 믿는 성도들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그들의 마음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넘쳐흐를 것을 예언하신 말씀이시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는 이 생수를 발견하고 나중에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침향 백 근을 갖고 나서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정성스럽게 모셨다. 요한복음 4장의 수가 성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여인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나 살아도 해결되지 않던 인생의 문제가 예수 만나서 해결되었고 구원의 복음을 깨닫게 되었다.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가 예수 만나서 고침 받고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현장을 보고 놀라워하는 무리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요한복음 6장에서는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도 5천명이 되는 무리를 배 불리 먹이셨다. 남은 부스러기만도 12광주리에 가득하였다. 실제는 2만명의 무리였다. 배부르게 된 무리들은 예수를 임금 삼으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는 혼자 산으로 떠나 가셨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의 건너 편 가버나움을 향하였다. 금방 밤이 찾아 와 어두워졌다. 밤 중에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데 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심하게 일어났다. 불안에 떨면서 제자들이 십여리 쯤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데 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서 배에 까지 오셨다. 제자들은 그를 보고 두려워 하였다. 그 때에 “내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기뻐하고 예수를 배에 모셔 들였다. 얼마 후에 배는 호수 맞은 편 가버나움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이튿날 디베랴 들판에서 오병 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배를 타고 가버나움에 계신 예수를 찾아 왔다. 예수께서는 그를 만나러 찾아 온 무리에게“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6:26-27)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해 주셨다. 그리고 7장에서 “예수 믿는 자에게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리라”는 축복의 말씀도 약속해 주셨다.
그렇지 않나. 나 자신이 발 목 상태, 무릎 상태, 허리 상태의 물가에서 맴돌면 더 이상의 깊은 은혜, 넓은 은혜를 체험할 길이란 없다. 그러므로 내 마음 속에, 내 심령에 주님의 은혜의 강물이 넘쳐흐르기를 사모하고 열망하여야 한다.
지난번에 짧은 일정이지만 중국 신장위 자치구 우루무치 선교 현장에 다녀 오신 선교단 일행들은 보고 듣고 실감나게 체험하였지 않나. 이번 8월에 그곳 중앙 아시아 8개국에 흩어져 선교하는 선교사 50여명이 그루지아에서 선교사 대회로 모인다. 감리교 1250여명의 6대주에 흩어져 선교하는 선교사들 중에서 그 들을 섬길 기회를 우리 교회가 갖는 것은 영광이다. 교회 안에 할 일이 파도처럼 밀려 오지만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우리 모두가 예배, 기도, 봉사, 전도, 섬김에 식지 않는 열심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6000개가 넘는 감리교회들 중에서 우리 교회는 이제 겨우 7살 반된 교회이지만 금번에 4교회와 함께 손 잡고 저들 여덟 나라의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만나고 섬기고 선교현장의 기도 제목을 함께 나누고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 될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주님의 은혜인가. 물질과 기도로 후원하시는 속회와 가정과 개인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충성도 충성해 본 사람이, 헌신도 헌신해 본 사람이, 나누고 돌보고 베풀고 섬기는 일도 해 본 사람만이 그 은혜와 그 보람과 그 만족과 그 감사를 알게 된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어른 아이 청년 노인 할 것 없이 누구나 다 사천 척을 측량하여 보게 해 주신 그 은혜의 깊고 넓은 강물 속에서 영혼의 춤을 추며 헤엄 치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길 축원한다.
강가와 강 속의 모든 것들을 번성하게 하는 물.
사천 척의 강 물 가에는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 주님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 강가에는 이쪽이나 저쪽 언덕에 똑같이 온갖 종류의 먹을 과일 나무가 자라고, 그 모든 잎도 시들지 않고, 그 열매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나무들은 달마다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인데, 그것은 그 강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사람들이 먹고, 그 잎은 약재로 쓸 것이다.”
그 곳의 물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흘러가고 있었다. 주께서 또 말씀하셨다.“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흘러 나가서, 아라바로 내려갔다가, 바다로 들어갈 것이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날 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질 것이므로, 그 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
그 때에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느라고 강가에 늘 늘어설 것이다.
어부들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그물을 칠 것이다. 물고기의 종류도 지중해에 사는 물고기의 종류와 똑같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장엄한 축복의 말씀을 해 주신던 중에도 11절에 보면 그렇지 못한 곳이 있음을 언급하셨다. “그러나 사해의 진펄과 개펄은 깨끗하게 고쳐지지 않고, 계속 소금에 절어 있을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강의 안과 밖에 기적으로 펼쳐지는 소성의 기사 속에서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 '진펄'은 '진흙 수렁'을, '개펄'은 '물웅덩이'를 말한다. 모두 사해 주변의 언덕에 위치한 진흙 웅덩이를 가리킨다. 곧 우기에 바닷물이 넘치면 그 넘친 물이 계속 이 웅덩이 속에 고여 있게 된다. 그러나 그 고인 물들은 곧 증발하게 되며 그 지역은 남아 있는 소금기로 점점 두텁게 덮이게 된다. 그렇게 은혜 은혜를 말하고 선포하여도 도대체 받아들여지지 않는 영혼들이 있다는 말씀이다.
스바냐 2장 9-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것은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에 대하여 교만하여졌음이라.”고 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고 교만하게 사는 인생의 나중은 소돔과 고모라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모압과 암몬 자손이 누구인가.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 불 심판으로 멸망 할 당시에 소돔 성을 벗어난 롯의 두 딸이 아버지 롯을 술에 취하게 하고 아버지를 통해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이 모압이고 암몬이다. 그 후손이 그런 선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여기 스바냐 말씀에 보면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에스겔 47장 11절이 그런 경고의 말씀이다. 아무리 하나님이 이끌고 다니시며 환상으로 보여 주시고 말씀으로 교훈하셔도 듣고 깨닫고 변화 받고 은혜를 누리지 못하며 진펄과 개펄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상징적으로 생수의 강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회복과 구원의 축복에서 제외되어 영벌의 심판 속에 버려지게 되는 불행한 영혼이 있다는 경고의 말씀이시다. 스가랴 14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을 멀리 떠나 하나님께 경배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인생은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인즉”이라고 하셨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 강물이 흐르지 않는다. 진펄이 되고 개펄이 된다. 소금 땅이 된다는 말씀은 결코 축복의 말씀이 아니지 않나.
에스겔의 환상처럼 예수 안에서 죽은 것이 살아나고 번성하고 계절마다 먹을 것이 넘쳐나며 그 강물이 흘러 가는 곳마다 모든 물고기가 살아나되 각종 물고기가 번성하는 그런 은혜를 영적으로 누리고 전파하는 주인공이 되자. 에스겔을 통하여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신 이 말씀의 교훈의 당대뿐만 아니라 자자 손손 흘러가는 축복의 강물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