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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요5:39-47, 고전10:31) 20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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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19-10-29 22:09 조회 9,917 댓글 0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요5:39-47, 고전10:31)     2019. 10. 27  종교개혁주일

아파트 이름에 영어가 쓰인 지는 오래다. 한 때 며느리들이 시어머니 못 찾아오게 아파트 이름이 긴 영어로 된 아파트를 선호했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스카이케슬, 힐스테이트, 레미안...그 정도는 약과다.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이렇게 점점 복잡해져 왔다. 요즘 전국에서 이름이 가장 긴 아파트 이름은 파주시 ‘가람마을10단지동양엔파트월드메르디앙’이란다. 화성시 ‘나루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보라빌2차’, ‘남양주시 해밀마을5단지반도유보라메이플타운’ 등 스무 자에 육박하는 아파트 이름도 있다. 그런데도 지혜로운 시어머니는 젊은 시뉘 앞 장 세워서 찾아오니 시 어머니 혼자 찾아오는 것보다 더 부담 되어서 요즘은 그냥 쉬운 한국말로 바뀌어 간다고 한다. ‘이 편한 세상’ 뭐 이런 거 얼마나 쉽고 좋은가. 이 편한 세상 아파트는 상점도 다 이 편한 세상이다. 세탁소, 중국집, 수선집, 미용실, 이발소, 부동산 그런데 애견 센터가 들어섰는데 이름이 바뀌더란다. “개 편한 세상 애견센터” 이렇게 말이다.  

영국교회에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이란 것이 있다. 1643년에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대회(총회)에서 작성된 표준 문서 중 하나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짧막한 질문과 대답이 그 내용이다. 허버트 팔머(Helbert Palmer)에게 작성을 지시해 1648년 의회 승인을 완료했다. 그 소요리문답 제 1조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돌아가시기 전에 기도하신 예수의 기도가 나온다. 그 긴 기도의 중심이 ‘영화롭게’ 와 ‘영광’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예수께서 하신 기도의 시작은 이렇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영어로 하면 한 단어다. 영화롭게는 ‘glorify'이고 영광은 ’glory'이다. 사전에 찾아보면 ‘영화롭게’라는 것은 ‘영광’이란 명사의 타동사이다.

“…을 찬미[예찬]하다; [신의] 영광을 찬송하다; [신을] 숭상하다; …에게 신의 영광을 주다.” 이런 설명으로 되어 있다.

10월 한달 동안,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오직 말씀으로
라는 주제의 말씀을 묵상해 왔다. 

그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신앙의 표현이 아닌가. 오늘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이라는 주제의 묵상을 계속할 것이다. 

벌써 10월 마지막 주일이다. 11월 한 달 만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강림절기가 시작된다. 강림절이란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절기이다. 대강절이라고도 한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베들레헴 근동에서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 때 천사가 목자들의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었다. 목자들은 크게 무서워하였다. 천사들이 하는 말이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천군가 천사라는 말은 천사의 많은 수를 말한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만만 천천의 천사들의 찬송이라고 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히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여기 천군과 천사의 찬송의 가사 중에 ‘하나님께 영광이요’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매우 소중한 표현이고 강조이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로 보내 주신 일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시작을 알리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 받을 백성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를 이룩하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이 땅에 계신 동안에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하시려는 일을 순종함으로 완성하셨다. 불순종함으로 죄 범한 인간은 스스로 그의 죄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스스로 죄에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최근에 레위기에서 오래도록 대한 제사의 그 다양한 제사 즉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를 위하여 송아지와 양과 염소의 피를 흘리게 하였다. 그 모든 것들을 불로 태워 향기 나는 화제의 제물로 드렸다. 그래도 완전하고 영원하게 해결할 수 없던 인간의 속죄의 문제를 단번에 이룩하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십자가의 죽으심이다. 

‘하나님께 영광이요’라는 말씀은 그런 하나님의 하시려는 섭리가 온전히 다 담겨 있는 찬송의 가사이다. 시편이나 요한 계시록에 보면 ‘영광’을 주제로 한 찬송의 가사가 반복된다. 왜 그럴까.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생각하여 보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다.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이는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증거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을 감사하고 증거하고 전파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즉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성도는 예수의 영광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다.   
요한복음 5장의  앞부분의 말씀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양문 곁 베데스다 라는 못에 가셨을 때의 일화를 담고 있다. 예수는 그 곳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시자 평생 못 걷던 중환자가 자리를 들고 걷게 되었다.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느냐고 시비를 건 것이다. 그 때 예수의 대답은 분명하였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 일 후로 유대인들은 힘을 합쳐서 예수를 더욱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 저들에게 문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저들에게 거슬렸던 것이다. 

이런 일 후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룩하셔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주셨다. 그 긴 말씀이 요한복음 5장 19-47절까지의 긴 말씀이다. 그 중의 일부를 오늘 읽은 것이다. 

자 그러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영생을 얻는 것.
39-40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영생’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다. 곧 구약과 신약의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로부터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로 시인하려 하질 않았다. 예수로 말미암는 영생의 길을 거부하였다.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즉 영생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는 길이다. 예수가 길이고 예수가 진리이고 예수가 영원한 생명이시다. 

그런데 40절 말씀처럼 유대인들조차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예수께 나아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예수는 죄 사함과 영생을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와 함께 동행하신 장면이 나온다. 글로바라하는 제자와 또 한 제자였다. 70인의 제자들 중에 속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 때 설명해 주신 부활하신 예수의 설명 중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하고 말씀하시면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해서 모든 성경의 쓴 바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 부활하신 예수께서 다른 말씀하지 않으시고 구약의 모든 말씀 중에 자기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언급하시면서 ‘자신이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에 대하여 설명해 주셨다. 어떤가. 당신은 예수 안에 영생을 믿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얼마나 불행한 자인가.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이 그것이다. 평생 예수의 부활과 믿는 자의 죄 사함과 영생을 증거하며 살아 왔는데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이라면 자기 자신처럼 불쌍한 자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바탕은 죄 사함과 영생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도덕, 윤리, 수양의 차원에서 머무는 그런 세상 종교 생활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사하고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생명 즉 영생을 선물해 주시기 위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구주로 보내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 중에서 첫째는 영생의 신앙을 갖는 것이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여야 한다. 요한복음 1장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 안에 생명 즉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 영원한 생명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빛이시다. 그 생명의 빛이 어둠에 비치었지만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다. 그 빛이 이 세상에 왔을 때에 그 빛을 영접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할렐루야. 이것이 영생이고 이것이 죄 사함이고 이것이 구원이고 이것이 자녀됨이고 이것이 거듭남이고 이것이 천국 백성이 시작인 것이다.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3절을 보라. 

“예수 앞에 설 때에 흰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
우리 주 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하는 믿음을 가짐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심각한 말씀을 하고 계시다. 41절을 보라.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시면서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라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그 당시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을 준행하는 일에 철저한 자들이었다. 금식도 잘했다. 남들 보는데서 긴 시간 기도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바탕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드러내고 인정받고 추앙받고 자랑하기 위한 지극히 인본적인 태도였다. 

예수는 가시는 곳마다에서 안식일에도 거침없이 각색 병자들을 고치셨다. 왜냐하면 예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를 고친 일도 안식일에 있었던 일이다. 이 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고 하였다. 요한복음 5장 16절과 18절이 그런 내용을 자세하게 싣고 있지 않나.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유대인들이 왜 예수를 박해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한 것인가. 42절 말씀처럼 저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자기 영광을 취하고 자기 출세, 자기만족, 자기 영달을 유지하려는데 급급한 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실상이었다. 

나중에 예수를 죽일 때 보라. 대 제사장 가야바가 앞장서고 그의 장인인 이미 대 제사장을 지낸 안나스가 가세하였다. 대제사장을 지낸 요한 문중, 알렉산더 문중 등등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한 마음 한뜻이 되어서 똘똘 뭉쳐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해 죽이는데 하나가 되었다. 본디오 빌라도 총독조차도 예수에게서 그를 사형에 처할 만한 죄 몫을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유대인 무리의 함성에 못 이겨서 사형 언도를 내리고 말았다.
우리가 사도 신경에서 고백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는 고백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 천안 하늘중앙교회에서 2000여명의 충청남도 감리교도 들이 모인 선교 대회에 다녀왔다. 오전에 특강하고 점심 식사 후에 ‘박찬주 장군’이 간증하였다. 남아서 간증을 다 듣고 왔다. 그는 박지만의 동기생이다.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이재수 기무사령관의 동기이다. 4성 장군이 누명을 쓰고 육군 지하 감방에서 87일간 억울하게 갇혀 지낸 날들을 담담하게 풀어 나갔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있다. 애매히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대법원 판결로 그의 무혐의가 입증되고 무죄가 되었다. 전역한 그는 전국 사방을 찾아 다니며 간증하기 바쁘다. 그는 육군 본부교회 시무장로이다. 4형제가 모두 천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육사에 간 감리교인다. 그의 큰 형은 감리교 목사이다. 별 넷을 단 장군이었던 그는 87일간 육군지하감방에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갇혀 지내는 중에 마음에 가득한 것은 억울함과 분노심이었다고 했다. 5%가 장래에 대한 불확실이라면 95%는 삭혀지지 않는 분노심이었다고 했다. 시선이 흔들려서 성경도 읽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예수께서 바로 그런 억울한 고난을 당하시고 골고다 언덕에 끌려 가셔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다. 예수를 죽인 무리들은 42절의 말씀처럼 그들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 예수를 죽인 이들은 자신들이 선점한 유대 종교 안에서의 종교적 힘과 권세를 유지하고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사랑으로 대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빌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빙자해서 자신들의 교권을 유지하려는 야심만 가득한 자들이었다. 

요한복음 7장 30절에도 보면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고 했다. 32절에도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아랫사람들을  보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잡아 없애려고 하였다. 7장 5절에 보면 심지어는 예수의 아우들조차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45절에 보면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 왔다. 그 때 “어찌하여 잡아 오지 아니하였느냐”하고 물었다. 아랫사람들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하고 대답하자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그 때 50절에 보니까 니고데모가 나서서 한 마디 하였다. 요한복음 3장에 예수 만나러 개인적으로 찾아 갔던 그 관원 니고데모이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7:31)

이런 눈으로 요한복음을 관찰하며 묵상해 가다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그 당시 바리새인, 대 제사장, 유대의 그 어떤 지도자들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 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니고데모 같은 인물이 나중에 억울하게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예수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하는데 앞장서지 않았나. 이는 무슨 의미인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종교적인 권력만 유지해 나가려하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틈바구니에서 하나님은 주옥처럼 숨겨 두셨던 한 사람 니고데모를 등장시키고 계시다. 

자신에게 물어 보아라.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걸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예수 믿는 이들을 찾아내서 죽이려고 혈기 등등하게 돌아다니던 사울은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다메섹 체험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그 동안 잘 못 살아 온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였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2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란 증거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이다.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합력한 선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달라야 한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끌려 나온 여인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여인을 끌고 예수 앞으로 왔다. 그 장면을 상상해 보라. 간음하던 현장의 남자는 어디로 간 건가. 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여자만 끌고 온 것일까. 저들은 예수에서 모세의 율법을 언급하면서 돌로 쳐야 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수를 시험하고 예수의 의중을 물으려 했다. 그 때 예수는 땅에 엎드려 글씨를 땅에 쓰다가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고 계셨다. 그 때 양심에 가책을 느낀 나이 든 이들과 젊은이들 할 것 없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 자리를 슬금 슬금 떠나갔다. 예수는 자신 앞에 홀로 남아 있는 여인을 향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타이르셨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하고 그 대답을 스스로 찾게 된다. 그렇지 않나. 무엇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인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으로 부터인데 43절에 보니까 예수를 영접하려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서로 사람의 영광만 취하려 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하셨다. 그러하니 “너희가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우린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역사를 믿으며 산다.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복인가. 
542장 찬송 “구주 에수 의지함이” 후렴 가사가 무엇인가.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오죽 답답하셨으면 예수는 모세의 말도 안 믿는 너희들이 나의 말을 믿겠느냐고 안타깝게 말씀하셨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중에 요한복음 3장 16절을 모르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 앞의 두 구절 즉 요한복음 3장 12-15절을 보라.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앙생활이 무언가. 땅의 일만 믿으려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일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놋 뱀 사건은 민수기 21장 4절부터 나오는 사건이다. 출애굽한지 38년 되던 해에 불평하고 원망하던 광야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어 가고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하나님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꼭대기에 매어 달게 하셨다. 믿고 쳐다보는 자는 불 뱀에 물렸어도 살아나리라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 사건을 예수께서 인용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음이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대하면 예수께서 믿음의 소중함을 무어라고 설명하셨는지 쏙쏙 이해하고 믿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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